[건강비타민] 전화기만 똑똑해진 시대
2012년 02월 12일 (일) 18:47:59 뉴스천지 newscj@newscj.com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
최근 급속도로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있다. 스마트폰이란 말 그대로 똑똑하고 영리한 전화기다. 각종 기능들을 망라하고 있어서 단순히 전화기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편지, 계산기, 지도, 컴퓨터, 게임기, 인터넷, 사진기 등을 대신할 수 있다. 스티브 잡스의 천재적인 창의성에 의해서 이제 스치기만 하는 터치 기능까지 더해져 편리하고 손쉽게 사용할 수도 있다.
처음에 핸드폰과 인터넷이 보급되어서 세상이 참 편리해졌다고 느낀 것이 엊그제인데 정말 전자 기계의 발전은 눈부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한편으론 우리의 두뇌가 과연 발전하고 있는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할 수 있다. 오히려 퇴보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우리가 아령과 러닝머신을 사용하여 팔과 다리의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처럼 두뇌는 쓰면 쓸수록 점차 기능이 활성화되고 향상된다. 구구단을 외우고, 간단한 암산을 하며, 친구들의 이름과 거주지와 직업을 기억하는 일 등은 모두 나의 머리, 즉 뇌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뇌를 대신하는 기계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노래 가사를 외우지 않아도 노래방 기계는 친절하게 속도에 맞춰서 노래 가사를 보여주고, 필요한 정보를 암송하지 않아도 컴퓨터의 인터넷 세상에서 방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뇌는 지식을 찾고, 편집하며, 전달하는 기능으로 역할의 변화가 일어나는 대신에 전통적인 기능인 지식의 생성, 암송, 응용, 발전의 기능에 소홀하게 되는 것이다. 이른바 ‘디지털 치매’ 현상까지 오는 사람들도 있다.
필자가 진료한 환자 한 분은 자신의 집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핸드폰을 집에 놓고 왔는데 입력된 집 전화번호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 깜짝 놀라서 자신의 핸드폰 번호를 떠올렸는데 끝의 두 자리 수가 헷갈리면서 확신할 수 없었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수첩을 찾아서 확인하고, 여러 번 전화를 걸다보면 저절로 외워지는 전화번호였다. 중요한 회식 장소에서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을 예상하여 소위 십팔번 노래 가사를 외웠고, 노래에 자신 없는 사람은 시를 암송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낭만적이었다. 노래를 부르다가 떨리고 당황해서 가사를 잊어버리면 옆에서 다른 한 두 사람이 가사를 대신 불러주며 노래를 함께 부르곤 했다. 또 다른 환자 한 분은 이제 자신은 종이에다가 글을 잘 쓰지 못하겠노라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분은 직업상 글을 많이 쓰는 분인데도 그러하다. 어린이들의 악필이 점차 늘어나고, 글씨 잘 쓰는 사람도 이제 점차 글씨체가 흐트러지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와 같은 세상의 변화가 진행되어 뇌의 정보 저장 역할을 디지털 기기가 대신하면 결국 기억능력이 퇴화할 수밖에 없다. 급기야 디지털 기기 없이는 간단한 정보조차 기억할 수 없는 최악의 상태에 이를 수도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뇌는 다행스럽게도 가역적이다. 즉 다시 열심히 사용하면 퇴화를 막을 수 있다. 디지털 기기를 현명하게 사용하되 나의 뇌에게도 일을 주자. 열심히 생각하고 중요한 정보를 외워보자. 마음에 드는 시의 구절을 암송하고, 노래 가사도 외워보며, 종이책을 읽으며, 노트 한 권에 나름대로의 에세이도 적어 보자. 일기를 쓰면 더욱 좋다. 잘 써지는 느낌 좋은 볼펜으로 일상의 계획을 세워 적어보자. 형광펜을 손에 들고 책에 밑줄을 그어보자.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저장된 바둑 게임을 하는 대신에 친구들 또는 가족을 상대로 바둑 대결을 벌여 보자. 기계만 똑똑해지고 사람은 우둔해지는 작금의 현실이 억울하지 않은가. 간단한 계산을 머리로 해 보고, 집과 사무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자꾸 외워 볼 것이며, 친구의 가족 이름들도 머릿속에 집어넣고 수시로 꺼낼 수 있게 만들자. 처음 보는 사람의 명함을 보고 핸드폰에 저장하는 대신에 한 번 더 읽어보고 머릿속에 집어 넣어보자.
디지털 치매에 걸리지 않아야 나중에 진짜 치매에도 걸리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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