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아이즈]이슈진단 "성범죄 사회 발찌를 채워라"-손석한 박사 "성폭력범 대부분 "정신 장애""
기사입력 2012-09-17 14:15
【서울=뉴시스】손석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학박사·연세신경정신과 원장 = 성폭력 사건들이 최근 매스컴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다. 성폭력은 과거에도 있어 왔으나 점차 수법이 잔혹해지고, 또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성 범죄가 급증하는 것으로 보여 사회적 분위기를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어린 딸을 가진 부모들이 제대로 외출을 못하거나 모든 연령대 여성의 가족들이 ‘우리 가족에게도 이러한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있는 지경이다.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은 사건 이후에도 두려움에 떨면서 그날의 악몽을 잊지 못한 채 각종 정신과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우울증, 불안장애, 수면장애, 대인공포증 등이 그것들이다.
한편, 가해자들의 정신 건강이나 인격 구조에 대한 의문도 증폭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어떠한 사람들이기에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정도의 잔인무도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가해자들에 대한 보다 더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연구가 향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마침 최근 한 대학병원 연구팀의 조사 결과가 있어서 이를 소개한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건강의학교실 송동호 교수팀이 2010년 8월에서 2011년 5월까지의 성폭력 가해자 22명의 정신과적 평가를 진행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가해자 중 36.4%인 8명이 ^성도착증^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소아 성애증(5명, 22.7%), 우울성 장애(5명, 22.7%), 알코올 의존(3명, 13.6%), 조현병(2명, 9.1%) 등이 뒤를 이었다. 소아 성애증은 어린이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서 성 행위를 하려는 병이다. 조현병은 과거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는데, 망상, 환청이 생기고 감정이 줄어들며 사고 내용도 빈곤해지는 병이다. 또 조사 대상 22명 중 7명(31.8%)이 B군 인격 장애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구체적 유형을 보면 3명(13.6%)이 반사회적 인격 장애, 3명(13.6%)이 자기애적 인격 장애, 1명(4.5%)이 경계성 인격 장애로 나타났다.
인격 장애는 그야말로 한 개인의 인격 구조에 심각한 장애가 있어서 사회생활 및 대인관계에 문제를 초래하는 질병이다. 인격 장애는 크게 A, B, C군으로 나뉘는데, 성폭력 가해자가 보였던 B군 인격 장애는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변덕을 보이는 게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성 범죄자들이 곧 정신질환을 갖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 범죄자들의 정신질환 유무 또는 죄질과 뉘우침의 정도 등에 따라서 처벌이나 치료가 이루어져야 할 것은 분명하다.
필자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서 그들의 심리적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그들은 도덕 발달이 결여된 채 성인이 되었다. 인간이 태어나서 몸이 자나라는 것을 성장이라고 말한다면, 발달은 주로 정신 심리적 차원의 자라남을 의미한다. 언어 발달이 이루어져 말을 하게 되고, 인지 발달이 이루어져 생각하고 추론하며 학습에 임하게 되며, 사회성 발달이 이루어져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며 인간관계를 맺는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덧붙이자면, 도덕 발달이다. 도덕이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능력과 더불어서 정의롭게 행동으로 실천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아무리 옳고 그름을 인지적으로 잘 판단한다고 할지라도 실제 행동이 옳지 않으면 그것은 진정한 도덕성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인간에게는 ‘양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러한 양심의 발달로 인하여 잘못된 행동을 하려고 할 때 죄책감, 부끄러움, 머뭇거림 등이 느껴지는 것이다.
그런데 성폭력 가해자들은 아무리 피해자가 애걸복걸을 하거나 고통에 신음하는 모습을 봤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동물적인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 범행을 지속하므로 양심이 결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게서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과 공감 능력을 기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는 인간의 도덕 발달을 6 단계로 나누어 설명했다. 1단계는 벌을 받지 않으려고 규칙을 지키고, 2단계는 상을 받기 위해 규칙을 지키며, 3단계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또는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규칙을 지키며, 4단계는 규칙에 대한 사회적 필요와 잘못된 행위에 대한 양심의 가책이나 죄의식을 스스로 인식하며, 5단계는 서로 경쟁하는 가치와 모순되는 가치가 있다는 것과 어떤 공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며, 6단계는 보편적인 도덕적 원칙들의 정당성을 인식하고 그것들에 대해 언급하는 단계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1, 2 단계를 9세까지는 완성시키고, 20세 이후가 되어야 비로소 마지막 두 단계에 도달한다. 그러나 성폭력 가해자들은 벌을 받지 않으려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수준에도 못 미치고 있으니 그들은 도덕 발달에 있어서 1단계 조차도 발달시키지 못한 셈이다.
둘째, 그들은 충동 조절의 어려움을 보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다 각종 충동과 욕구들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길을 가다가 날씨가 덥고 땀이 나면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고, 진열장 안의 멋진 옷을 보면 사서 입고 다니고 싶으며, 특정한 모임에서 만난 멋진 이성에 대해 매력을 느껴 말을 건네고 사귀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들을 당장 실현시키지는 않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 상대방의 입장, 나중의 결과 등을 모두 다 종합해서 판단하여 즉시 행동해도 괜찮으면 곧바로 실천하고,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 내리면 행동 실천을 취소하거나 포기하거나 혹은 지연시킨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이와 같은 욕구-인식-판단-행위의 연쇄 과정에 중대한 결함이 있다. 그들은 욕구를 느끼면 곧바로 행위를 하는 정신구조를 갖고 있다. 즉 인식과 판단 능력을 생략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행동 메커니즘을 충동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충동을 억제하고 판단 능력을 유지시키는 역할을 하는 곳은 두뇌 중에 전두엽 부위다. 뇌 과학적으로 볼 때 그들은 전두엽 기능에 손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연구 결과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한편으로는 마약 또는 인터넷 중독자나 충동조절 장애 환자들이 보이는 뇌 기능 양상과 유사한 면도 있다.
셋째, 그들은 중독의 성향을 갖고 있다. 중독을 일으키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분명한 것은 종류에 상관없이 각종 중독자들이 ‘쾌락’을 추구한다는 점이다. 마약 중독자들은 복용 당시의 황홀감과 환각을 추구하고, 인터넷 게임 중독자들은 게임에 빠지면서 매우 강력한 정신적 몰입도와 주의집중력, 성취감, 자아도취감, 우월감 등을 경험하며, 알코올 중독자들은 술을 마시면서 괴로움의 망각과 감정적 고취를 느낀다. 결과적으로 모두 쾌락이라는 부산물을 얻고자 함이다.
성폭력 가해자들 역시 일탈적 성 행동을 통해서 쾌락을 얻으려고 하고, 일단 얻어진 쾌락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서 반복적 범행 또는 재범을 저지른다고 할 수 있다. 많은 가해자들이 술이 취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르거나 혹은 인터넷 게임에의 중독이 의심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쾌락을 보다 더 극대화시키거나 배가하려는 시도라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넷째, 그들은 열등감을 갖고 있다. 성폭력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을 폭력으로 제압시켜서 무력화시킨다. 그들은 범행 당시 지배자의 위치에 놓인 것이다. 마치 맹수가 초식동물을 잡아서 꼼짝 못하게끔 한 다음에 천천히 잡아먹는 것과 같은 야만적인 광경이 상상된다.
그들의 공격성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그들의 공격성 이면에는 상당한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다. 정상적이고 건전한 교제에 의해서 이루어진 성적 행동이 아니라 자신보다 약한 여성,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행은 결론적으로 평소 내면에 쌓아두었던 열등감을 그 순간이나마 우월감으로 전환시키려는 발악적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성폭력 가해자들의 정신 심리적 특성을 네 가지로 분석해 봤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나 각 개인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첫째, 어려서부터 도덕 교육을 강조하여 정상적인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키워내야 한다. 이는 가정과 학교 모두가 노력해야 하고, 사회적 분위기 또한 결과보다는 과정과 동기를 중요하게 여기는 도덕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둘째, 중고교 학생들의 정신건강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각종 비행을 저지르는 아이들을 개별적으로 상담하고 검사하여 치료 및 교육에 앞장서야 한다. 강의 방식의 단체 교육보다는 한 명의 청소년을 꾸준하게 추적 관찰 교화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 임상심리 전문가, 상담 교사, 카운슬러 등의 역할을 보다 더 강화시켜야 한다.
셋째, 정부는 성폭력 가해자들에 대한 전수 조사를 통해서 그들의 인격 구조, 정신 건강 상태, 사회경제적 배경, 가족 관계나 양육 과정 등에 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는 향후 성폭력 범죄의 예방 및 재발 방지에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다. 여러 대학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들도 기존의 조현병, 조울증, 우울증, 불안장애 환자들의 진료 및 연구 외에 사회적 공헌 측면에서 성폭력 범죄자들에 대한 연구에의 참여를 촉구한다.
psysohn@chollian.net
※이 기사는 뉴시스 발행 시사주간지 뉴시스아이즈 제295호(9월18일~24일자)에 실린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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