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안 달면 내가 지는 것 같아요”
악성댓글에 무감각해진 초등생들
케이블TV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 3’에서 우승한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 씨가 위암으로 사망한지 10여일이 지났다. 생전의 그는 암과 더불어 악성 댓글(악플)과도 어렵게 싸워야 했다. 일부 누리꾼은 “암 걸린 사람이 어떻게 춤도 추고 노래도 하느냐” “동정심 유발해 우승했다” 같은 댓글로 그를 괴롭혔다.
최근 초등생 사이에서도 악플을 죄책감 없이 습관적으로 다는 경우가 많다. 특정 연예인과 관련된 사진이나 기사에 근거 없이 비방하는 글을 올리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을 인터넷에 올린 사람의 개인정보를 추적해 *‘신상털기’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연예인 팬클럽끼리 ‘댓글 전쟁’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는 A 양. 한 남자 아이돌그룹의 열혈 팬인 그는 좋아하는 가수와 스캔들이 난 여성 아이돌그룹 멤버들의 외모를 두고 ‘분명히 성형했다’ ‘못생겼는데 어떻게 연예인이 됐나’와 같은 내용을 댓글로 올린다고 고백했다. A 양은 때론 좋아하는 아이돌그룹과 라이벌 관계에 있는 그룹들을 비방하는 악플도 단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아이돌그룹의 팬들 사이에서 댓글 싸움도 일어난다. 심한 욕설도 오고간다. 분이 안 풀리면 자신과 싸운 상대 아이돌의 팬이 단 악플 내용을 캡처해 누구나 볼 수 있는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다.
A 양은 “사람들로부터 ‘저 가수의 팬클럽은 악플을 다는 개념 없는 사람들만 모여 있다’고 찍히면 결국 그 팬클럽이 응원하는 가수가 욕을 먹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댓글을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하면 내가 지는 것 같고 답답해요. 악플 때문에 상처받아 목숨을 끊은 연예인도 있지만, 진짜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별로 마음에 와 닿지 않아요.”(A 양)
악플을 다는 초등생 대부분은 죄책감 없이 그저 재미있거나 호기심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이 지난해 발표한 ‘인터넷윤리문화실태조사’에 따르면, 악플을 달아본 적이 있다고 답한 국내 초등생 인터넷이용자들은 악플을 다는 이유에 대해 ‘재미나 호기심 때문에’(47.5%),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기 때문에’(45.5%), ‘상대방에게 똑같이 되갚아 주기 위해서’(44.6%)의 순으로 답했다.
“악플도 물건 훔치는 것처럼 나쁜 행위”
악플로 인한 피해가 점점 심해지자,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신고가 들어온 악플을 작성한 사람을 끝까지 추적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상의 욕설, 모함은 명예훼손죄에 해당된다. 만 14세 미만 미성년자에게는 형사처벌이 내려지진 않지만 부모님에게 바로 알려진다. 심각한 범죄인 경우 소년법원에 보내 적절한 보호처분을 받도록 하고 있다. 이때의 보호처분은 소년원으로 보내지거나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 상담 및 교육 등이다.
전문가들은 악플을 다는 행동은 물건을 훔치는 것처럼 범죄라는 사실을 어린이들이 꼭 알아야한다고 강조한다.
손석한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일상생활에서는 누군가가 보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함부로 말하거나 행동할 수 없지만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는 자신뿐 아니라 여러 사람이 악플을 달기 때문에 죄책감이 없어진다”면서 “악플을 보는 상대방의 마음이 얼마나 괴롭고 아플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악플을 올리기 전에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노트에 스스로 분노를 쏟아내는 것도 악플을 자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 어휘 UP
신상 털기: 특정인의 신상 관련 자료를 인터넷 검색을 이용해 찾아낸 뒤 인터넷에 무차별 공개하는 사이버 테러의 일종
▶정민아 기자 m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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