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범죄"는 없다…"사회적 분노" 관리가 대안
[충동사회④]빈곤 소외층, 전과자의 범죄율 높아 특별관리 절실
머니투데이 박소연 기자 |입력 : 2013.09.10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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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참지 못하고 있다. 툭하면 "묻지마 범죄"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참을성이 상실되면서 스스로를 통제하기 힘든 "분노사회"로 변하고 있다.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청소년을 훈계하는 노인들이 폭력에 휘둘리고 다른 사람의 행복한 삶이 보기 싫다며 흉기를 휘두르는 "분노 보편화 사회"가 되고 있다. 머니투데이는 "인내실종사회"로 가고 있는 현 실태를 되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다. 개인의 분노가 사회 집단에 미치는 영향 등을 살펴보고 대안과 해결책을 모색할 예정이다.#지난 2일 오후 9시10분쯤 서울 광진구 구의동의 노상에서 공익근무요원 방모씨(22)가 이유 없이 행인 김모씨(35)의 오른쪽 어깨를 흉기로 찔렀다. 함께 사는 외삼촌에게 잔소리를 들은 뒤 충동적으로 범행했다는 방씨는 경찰에서 "갈 곳이 없으니 사람 찌르고 감옥에 가겠다"고 말했다.
방씨의 범행은 이른바 "묻지마 범죄"로 불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동기 없는 범죄는 없다고 한다. 특히 최근의 충동범죄는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자로 소외된 이들이 오랜 기간 차별과 좌절감을 겪다 저지르는 ^절망 범죄^의 특성을 띠고 있어 이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강화가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스트레스 한국사회"…"범죄 충동" 자극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에서 개개인이 느끼는 "행복감"이 낮으며, 이것이 "범죄 충동"과 관련이 있다고 분석한다.
오랜 기간 범죄자들 심리를 분석해온 서종한 아주대 심리학과 연구원은 "범죄자들과 면담하고 심리검사를 한 결과 행복감(주관적 안녕감)과 반사회성 혹은 사이코패스 성향 간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스스로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만족감을 가질수록 자신의 강점과 능력을 인식하고 문제를 긍정적인 측면에서 해결하고 극단적인 행동에서 벗어나려 노력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8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행복지수"는 36개국 중 하위권인 27위. 안전(9.1)과 시민참여(7.5), 교육(7.9)은 높은 반면 일과 생활의 균형(5.3), 건강(4.9), 삶의 만족도(4.2) 등은 하위권에 머물렀다.
높은 교육수준과 민주화를 누리면서 삶의 만족도가 낮은 이유는 뭘까. 전문가들은 한국이 "스트레스 관리가 어려운 사회"라고 입을 모은다.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뤄내는 과정에서 발생한 낙오자에 대한 사회적 배려와 구제시스템이 부족해 개인들은 한발자국만 잘못 내딛으면 영원히 낙오한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8일 내놓은 조사에 따르면 국민 75.2%는 "열심히 노력해도 계층상승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급격한 사회변화를 겪어 이에 적응 못한 이들이 특히 많고 이들은 실패를 불공정한 사회 탓으로 돌리기 때문에 더욱 분노하게 된다"며 "위기 상황에서 "가진" 사람들은 위기대처의 수단을 지니는 반면 사회적 자원이 부족한 이들은 위기에 무방비로 노출돼 고통을 오롯이 느끼게 된다"고 분석했다.
서종한 연구원은 "개인이 가지는 심리적, 정신적인 어려움에 대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감시와 평가의 체계 속에서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드러내고 치료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며 사태를 악화시키게 된다"고 말했다.
"충동"은 오랜 분노의 표출인 경우가 많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은 "충동조절장애를 겪는 아이들 중엔 가정폭력을 겪거나 질병을 앓으며 사회에서 뒤처져 노력해봐야 제대로 살 수 없을 거라는 절망과 사회에 대한 원망을 오랫동안 키운 경우가 많다"며 "이런 마음을 먹다 범죄를 저지를 경우 충동조절장애가 범죄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김성환 경찰청 범죄행동과학계 프로파일러(경사)는 "범죄를 분석해 보면 동기가 없는 경우는 없다"며 "묻지마 범죄"라는 용어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해 경찰청 차원에서 새로운 용어를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사회안전망 강화해 "사회적 분노" 관리해야
자료: 대검찰청
대검찰청이 지난해 발생한 묻지마 범죄 55건을 분석한 결과 가해자의 직업은 무직(63%), 일용노동자(24%) 등 소외계층이 절대다수였으며 전과자 비율이 76%로 높게 나타났다. 결국 사회안전망 등 사회적 ^분노관리 시스템^을 강화해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해결책이다.
곽대경 교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립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을 파악하고 개별상황에 맞는 맞춤형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서 경보 신호를 조기에 감지할 수 있어야 하며 필요시 상담과 정신과 치료, 경제적 지원을 적절히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사회복지사의 절대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민간단체와 이웃이 항상 주변의 소외계층에 관심을 가져 "도움을 요청하면 달려온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범죄"를 개인 탓으로 돌리기보다 국가와 사회, 이웃이 함께 감내하고 책임지려는 인식 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홍봉선 신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형사정책은 범죄자들을 잘 교육하고 교정하는 "특별예방주의"보다 범죄자를 강하게 처벌하고 사회로부터 분리시키는 "일방예방주의"에 치중돼 있다"며 "교도소에 법학, 교육, 심리학 전문가들을 배치해 재기를 돕는 것이 재범률을 낮추고 사회적 비용은 줄이는 길"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강한처벌 일변도의 형사정책은 당장 눈에 거슬리는 것을 치우는 임시방편일 뿐 범죄가 발생하는 사회 자체를 변화시키지는 못 한다"고 지적했다.
김성환 프로파일러는 "우발적으로 보이는 범죄자의 행동 하나엔 사회적, 심리적 영향이 다양하게 작용하기 때문에 범죄의 원인과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고 대처하기 위해서는 경찰뿐 아니라 각계 전문가들의 다학제적인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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