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할(喝)]"학대 피해 아동" 갈 곳이 없다
기사등록 일시 [2014-09-03 09:00:39]
가해부모와 격리 뒤 보낼 곳 마땅찮아
친인척집, 보호시설 전전하다 다시 방치
심리치료 소홀하면 학대가해자 되기도
【서울=뉴시스】시사할 취재팀 = 지난달 29일 경기도 포천 한 빌라의 빨간 고무통 속에서 2구의 사체가 발견돼 국민들을 경악케 했다.
이 끔찍한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8살 아이는 수년간 학대를 받으며 살아왔다.
이 엽기적인 사건은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한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대원이 방안에 놓여있는 빨간색 고무통 속에서 2구의 시신을 발견하면서 서서히 전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소방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집주인 이모(50·여)씨가 남편의 시신과 자신이 살해한 내연남의 시신을 고무통에 넣어 둔 채로 안방에 방치해 집안은 온통 시신 썩는 냄새로 진동했다.
잠시도 견디기 힘든 공포의 현장에서 발견된 8살 남자아이는 소방대원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이송됐다.
^포천 빨간 고무통 살인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여론의 관심이 피의자 이씨의 여죄와 살해된 시신에만 쏠리다보니 정작 끔찍한 현장에서 발견된 학대받은 아이는 소홀하게 다뤄졌다. 경찰은 뒤늦게 피의자 이씨의 죄명에 아동학대죄를 추가했다.
뉴스 매체들은 아이가 오랜 시간 시신이 담긴 빨간통과 함께 집에 방치된 사실을 보도했지만 아이가 어떤 고통을 견뎌왔는지 또 사건 이후 어떤 조치가 이뤄졌는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엽기적 살인 사건 뒤에 가려진 학대 받은 아이, 부모에게 버려지고 사회에서 소외된 이 아이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뉴시스가 살펴봤다.
A군은 중앙아동기관의 보호를 받으며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아동보호기관의 한 관계자는 “A군은 앞으로 친인척에게 인계되거나 위탁가정, 보호시설, 그룹 홈 중 한 곳에 위탁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만 18세 미만이나 때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살펴보고 후유증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며 “아이에게 지금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일수록 (아이들의 치료) 기간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아이들이 (정신적) 치료를 마쳤다고 판단되면 다른 시설로 전원조치를 하는 게 보통이다. 그때부터 보호자는 해당 자치단체(시·군·구)가 되고 우리는 관리 차원에서 관여하는 정도다"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형식적이고 행정적인 절차만으로 피해 아동을 치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보육교사 B씨는 "보통 학대사건의 피해 아동의 경우 부모가 구속되거나 (아이와)격리되고 나면 아동복지센터 같은 곳에서 보호를 받게 되는데 이건 일시적인 조치다. 게다가 적절한 치료는 거의 이뤄지고 있지 않다"라며 "아동센터 등 기관에선 아이들을 보호하며 상담치료를 한다고 말하지만 치료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치료 기간도 짧아 문제다"라고 지적했다.
심신이 지친 피해 아동들은 결국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치료도 제대로 못받고 보호시설에서 잠시 머물다 친인척집이나 관련 시설로 옮겨 다니며 다시 한 번 버림받는 고통을 겪게 되는 게 현실이다.
결국 우리 사회가 하는 일이라곤 피해아동들을 가해자로부터 격리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지난해 10월 발생한 칠곡 아동학대사건의 계모는 "친구들과 소풍을 가고 싶다"는 8살 이모양의 머리와 가슴을 주먹과 발로 때려 갈비뼈 16개를 부러뜨렸고 결국 그 부러진 뼈가 폐를 찔러 아이는 숨을 거뒀다.
뉴시스 취재결과, 살아남은 언니는 가해자인 계모와 친부로부터 격리돼 고모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고모도 심리적 충격이 큰데다 아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복지시설 전문가는 "매스컴은 사건이 터졌을 때만 떠들썩하고 만다. 복지부나 아동학대예방센터 역시 가해자와 피해아동을 분리시키는 데만 급급하지 아이들에 대한 장기적인 보호대책은 전혀 없다"며 "결국 아이들은 친척집을 전전하는 게 보통이고 그곳에서 양육과 치료를 제대로 받는지 여부는 누구도 확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문제점을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문제점도 제기한다.
학대받은 아이들이 적절한 시기에 적합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다시 방치되면서 지속적으로 심리적 장애를 겪다보면 스스로 또 한명의 가해자로 성장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는 것이다.
소아정신과 손석한 박사는 "아동학대 가해자들은 어린 시절 학대 피해자였던 경우가 많다. 또 아동학대는 불안장애나 우울증 등 정신병리 증상을 유발한다. 국가나 사회가 지속적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다른 피해와 가해행위의 대물림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손 박사는 또 “아이들의 상태를 모니터링 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적극적인 개입이 필요하지만 복지와 치료 등 각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다르기 때문에 판단이 애매할 때도 있다. 언론에서 관심을 갖고 크게 보도하면 전문가들에게 더 많이 노출되고 그만큼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언론 보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달 중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제정되고 ‘아동복지법’이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정작 관련 예산은 전무한 상태여서 ^의미 없는 특별법’이란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아동학대범죄특례법^ 시행을 한 달 앞두고 예산을 지원해야 할 기획재정부가 예산 편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 "예산편성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런 소리를 하나. 복지예산에 대한 요구 자체가 크고 많기 때문에 요구를 다 맞출 수 없다"며 "복지부 내에서 다루는 사업들이 굉장히 많다. (모두) 같이 봐야 한다. 자신들 것만 보기 때문에 주관적인 기준으로 말한다. 그런 요구들을 감안해서 검토해야 하므로 예산은 끝이 없는 문제다. 9월23일이 되면 국회로 (예산안을)제출하기 때문에 그때 보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세이브더칠드런(Save the Children)에 따르면 현재 244개 지방자치단체 중 아동보호전문기관은 50곳이며 상담원은 375명, 피해아동전담보호시설은 전국에 36개에 불과하다. 아동을 가해자로부터 분리한다고 해도 피해 아동이 보호를 받으며 머물 곳조차 부족한 것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의 한 관계자는 “(피해)아동이 전국 어디에 살든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아동보호전문기관과 상담원 확충, 학대피해아동 긴급보호 조치 등 학대예방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시급하다”며 “지방정부에 맡겨진 아동학대 예방 및 보호업무를 국가사무로 환수하고 재원을 국고로 지원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아동복지시설연합회 관계자도 “최근에는 국가에서 피해아동들에 대한 치료비 등 일부를 지원하고 있지만 아동복지예산은 우선순위에서 노인, 장애인 예산보다 항상 뒤로 밀릴 정도로 열악한 게 현실이다. 그래서 이 아이들이 일반가정의 아이들보다 교육이나 환경적인 면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시행을 앞두고 있는 ^아동학대범죄특례법^ 에 대한 예산 뒷받침이 전무하다는 보도가 나간 뒤 누리꾼들의 댓글이 쏟아졌다.
^결국 아동특례법은 한 표를 얻고자한 쇼였나^ ^말로만 정부는 아이를 낳으라고 하지 대책은 전무한가^ ^대통령은 왜 이리 아이들에게 차가운가^ ^도대체 세금은 다 어디에 쓰이나^ ^우리의 국력인데…미래가 없다^ ^우리에게 희망은 없다^ 등 아동학대 사건과 피해아동의 사후 관리문제에 대해 누리꾼들은 한결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근 5년간 아동학대로 숨진 어린이는 총 56명으로 지난해에만 22명이 숨졌으며 이중 0~2세 영아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 ^시사 할(喝)^은 =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잘못된 제도나 문화 등을 비판하고 우리 사회가 공공성을 회복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신설한 기획이다. 할(喝)이란 주로 선승(禪僧)들 사이에서 행해지는 말로,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꾸짖는 소리다.
sisahal@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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