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부모 강요에, 분위기에 휩쓸려…(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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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13: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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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강요에, 분위기에 휩쓸려… 마구잡이식 스펙 쌓기 아이들은 무기력해진다

김재현 조선에듀 기자


입력 : 2016.11.21


트렌드 따라 갈팡질팡 ^억지 스펙^
수시만을 위한 스펙 설계 ‘부작용’
‘나만의 경험’으로 대입 승부봐야
  
초등 5학년 이승훈(가명·서울 송파구)군은 올해 내내 엄마 등쌀에 밀려 여러 스펙(spec·자격 요건)을 쌓았다. 코딩, 바둑, 펜싱, 웹툰…. 주로 올해 대한민국을 ^들었다 놨다^ 한 키워드들만 골라 경험했다. 이군 엄마는 모임이나 커뮤니티에서 소위 ^뜬다^ 싶은 분야의 정보를 확인하면, 이름난 학원을 백방으로 찾고서 막무가내로 이군을 밀어 넣었다. 스펙 교체 주기도 다소 빨랐다. 두세 달에 한 번꼴로 학원을 옮겼다. "재미가 없고 썩 내키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좋은 학교에 가려면 트렌드에 맞는 다양한 스펙을 갖춰야 한다기에 시키는 대로 했어요."


◇^묻지 마 스펙^ 쌓는 요즘 청소년들

요즘 어린이·청소년들이 ^강제 스펙 컬렉터(collector)^가 되고 있다. 부모의 강요나 교실 분위기에 휩쓸려, 별 흥미 없는데도 유행 혹은 인기 분야를 억지로 배우는 것이다. 현재 교육열(熱) 높은 서울·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이 같은 현상이 두드러진다. 이군은 "올해 우리 반에서 코딩과 바둑을 안 배운 친구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배우고 싶어서 배운 애들도 별로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러한 사례는 초교보다 중·고교 현장에서 훨씬 도드라진다. 특히 교내 동아리에 제 의지와 상관없이 가입하거나 조직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중·고교생들은 스펙을 갖추기 위한 시간을 따로 내기 어렵고 교내 활동만 인정하는 대입 특성상 동아리를 통해 주로 비교과 스펙을 쌓는다. 임성빈(서울 B고교 2학년·가명)군은 "원하는 대학에 가려면 적성에 맞는 동아리를 찾는 것보다 억지스럽더라도 명문대 진학 선배들이 많은 동아리에 가거나 좋은 대학 간 선배들이 경험한 분야의 동아리를 만드는 게 더 낫다고 본다"고 했다.

명문대 합격 선배들의 학교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도 ^묻지 마 스펙 쌓기^를 부추기고 있다. 서울대 사회계열 학과를 목표로 하는 고교 1학년 김승현(가명·서울 양천구)군은 "고교 진학 전 입시 컨설팅 기관에서 2016학년도 서울대 수시 모집(인문계열) 합격자 일부의 생기부(3학년 1학기까지 기준)에 기재된 비교과활동 중 동아리 활동을 분석한 결과를 봤는데, 합격한 선배들의 가입 동아리 수는 평균 4개 이상이었고 분야는 문과의 경우 경제·시사토론·영어신문 등에 집중됐다"며 "적성보다는 대입 성공 가능성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고교 입학 전부터 서울대 합격생의 동아리와 교내 인기 동아리를 비교해 가입 계획을 세웠다"고 했다.


◇"우리가 억지 스펙 갖추는 이유는…"

자녀들에게 ^억지 스펙^을 권하는 이유는 수시 중심으로 재편된 대입 환경 때문이라는 게 부모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입시·진학 정보에 밝은 ^강남맘^ 서영희(48· 가명)씨는 "대입 수시 합격을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성적, 희망 전공과 연계한 비교과 스펙"이라며 "비교과 스펙은 전공적합성에 맞게 설계하는 게 중요한데, 일반적으로 자신의 적성보다는 트렌드에 맞거나 명문대 합격생이 선택한 스펙을 쌓는 방법이 가장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조급증도 이를 부추긴다. 이군의 어머니 조희선(43·가명)씨는 "어렸을 때부터 다양한 분야의 경험치를 쌓아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스펙 격차^가 벌어져 입시 경쟁에 점점 밀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며 "아이가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 보니, 유행 분야라도 배우게 해야 마음이 놓여 억지로 시키고 있다"고 했다.

학생들은 인기·유행 스펙을 경험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이진영(서울 C고교 2학년·가명)양은 "요즘 유행하고 인기 있는 비교과 스펙을 너도나도 배우는 아주 솔직한 이유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고 경쟁에 뒤처지는 느낌도 받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

◇^억지 스펙^ 결국 부메랑… 대입 확률 높이는 건 ^나만의 경험^

각계 전문가들은 제 의지와 상관없는 마구잡이식 스펙 쌓기가 훗날 ^아노미(혼돈) 상태^를 유발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진로·진학 전문가 조진표 와이즈멘토 대표는 "능력과 스트레스의 상관관계를 분석한 심리학 이론 ^여크스-도슨 법칙(Yerkes-Dodson law)^에 따르면, 적절한 스트레스는 능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성과가 쭉쭉 떨어지고 무기력한 상황에 도달한다. 하기 싫은 스펙을 강제로 쌓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학이라는 목표 때문에 억지로 경험하곤 있지만, 누적된 스트레스가 최대치에 도달하면 머지않아 심각한 무기력증에 빠질 수 있다. 따라서 적절한 스트레스 조절로 최대 효과를 내려면 흥미와 적성을 반영한 스펙을 쌓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주도성을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고도 조언한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의원 원장(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은 "부모의 강요나 또래 분위기에 휩쓸려 스펙을 쌓는 학생은 의존성이 강하고 자기 조절 능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어린이·청소년기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거나 스스로 적성을 고려해 스펙을 선택하는 훈련을 해야 자존감이 높아지고 요즘 인재의 필수 능력인 자기주도 능력 향상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고 했다.

대입 현장에선 억지 스펙 쌓기가 합격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한 입학사정관은 "대입 성공을 위한 올바른 비교과활동은 합격 선배들을 카피한 거짓 스펙이 아니라 자신의 적성과 흥미를 고려한 나만의 경험이다. 억지 스펙과 나만의 스펙은 면접 과정에서 충분히 변별 가능하다. 남이 하는 걸 따라 하는 것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활동에 투자하는 게 대입 확률을 높인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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