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제목 : 성적 압박·잔소리로 곪은마음..(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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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5   12:3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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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압박·잔소리로 곪은 마음, 두통·강박으로 나타나기도

오선영 조선에듀 기자


입력 : 2016.09.19 강남 소아청소년정신과에는 어떤 아이들이 오나
  
외국어고 1학년인 A양은 입학 후 잠을 거의 못 이루고 학교만 가면 호흡곤란을 일으키는 등 불안 증세를 보였다. 시험이 다가오면 원인 모를 복통과 두통에도 시달렸다. 당연히 공부에도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A양은 "외고에서 나보다 훨씬 뛰어난 아이들을 만나고, 그들과 나를 비교하면서 불안이 더욱 심해졌다"고 했다. 원인은 A양 부모에게도 있었다. 엘리트인 A양 부모는 평소 "공부 잘 하지 않아도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내심 ^나만큼은 하겠지^라는 기대를 내비치곤 했다. 더 큰 문제는 A양 스스로도 자신에게 높은 ^기준^을 들이댄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1등^만 해온 터라 그렇지 못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주위에서 "꼭 1등 할 필요는 없다"고 타일러도, "나더러 평범하게 살란 말이냐"며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럴수록 불안 증세는 더 심해지고, 성적은 계속 떨어졌다. 견디다 못한 A양은 결국 부모와 상의해 정신과를 찾았다.



교육 전문가들은 대개 "정서적으로 안정된 아이가 공부도 잘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서일까. ^공부 잘하는 아이는 정서도 안정됐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많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성적이 뛰어난 아이 가운데는 A양처럼 지나친 압박감과 스트레스로 마음속부터 곪아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나라 교육의 중심이라는 서울 강남에 유독 소아청소년정신과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병원을 찾는 아이 중에는 (최)상위권 성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공부를 잘해 남들의 부러움을 사는 이들이 소아청소년정신과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 모를 통증… 정신적 스트레스 탓

고등학교 3학년인 B양도 원인 모를 두통에 시달리다 정신과를 찾은 사례다. 온갖 병원에 다니며 MRI 촬영 등 검사를 다 해봐도 원인을 찾지 못하다가, 정신과를 찾고서야 알게 됐다. 원인은 바로 ^엄마^였다. 지배적 성격인 B양의 엄마는 끊임없이 잔소리와 명령을 늘어놓는 스타일이었다. B양이 시험을 잘 못 보면 ^네가 어제 문제를 덜 풀고 자서 그렇다^며 타박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면 ^왜 일을 그따위로 하느냐^고 면박을 주기 일쑤였다. 학교 공부로 지친 아이 마음을 다독여주기보다 ^성취(실적) 중심의 대화^만 계속한 것이다. 결국 B양은 가장 중요한 고 3 시기에 스트레스로 인해 잠이 늘고 식욕부진에 빠지면서 성적까지 떨어져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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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인 C양 역시 어린 나이에도 시험 점수 하나하나에 연연하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로 서울 강북에서 강남으로 전학 온 게 화근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늘 자신감이 넘쳤지만, 전학 후 남과 자신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조금이라도 성적이 떨어질까 봐 불안에 떨었다. 특히 동생이 있음에도 부모의 기대와 관심이 자신에게만 쏟아지는 것을 견디지 못했다. 부모가 지극정성으로 모든 것을 챙겨주는 것조차 부담됐다. C양은 정신과 상담에서 "부모님이 싫다. 떨어져 살고 싶다"고 털어놨다.


어려서부터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은 아이 중에는 중·고교생, 혹은 대학생이 되고 나서 공부를 포기해 버리는 사례도 많다. 의대생인 D(24)씨가 이런 사례다. D씨는 어릴 때부터 ^의대 진학^을 목표로 엄마가 정해준 대로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만 했다. 하지만 막상 의대에 들어가고서는 컴퓨터 게임과 술에만 빠져 살았다. D씨는 "의대 진학은 내가 아닌 엄마의 꿈이었다"며 "(이렇게 마구잡이로 살아서) 엄마를 골탕먹이고 싶다"고 말했다.

학부모 중에는 아이의 정신적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도 많다. 중 3인 E군의 사례가 그랬다. E군은 "난독증인 것 같다"며 부모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같은 글을 수십 번 반복해서 읽는 증상 때문에 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일이 계속돼서다. 진단 결과 E군의 병명은 난독증이 아닌 강박증이었다. 자신이 글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워서 같은 글을 읽고 또 읽는 증세였다. E군은 "중학교 첫 시험을 망치면서 자신감이 떨어진 뒤로 강박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부모님께 몇 차례 강박증인 것 같다고 얘기했지만 무시당했다. 생각 끝에 ^난독증^이라고 하니 (공부에 방해된다고 여겼는지) 당장 병원에 데려오더라"고 했다.

◇"이겨내라"는 식의 강요는 금물

중·고교생 때 이러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아이들은 대개 유아·초등학생 때 문제 원인이 잉태되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와 강압에 따라 공부하면서 분노나 적개심을 품었다가 중·고교생 때 이를 터뜨리는 것이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일탈행동으로 푸는 사례도 적지 않다. 예컨대 (컴퓨터 게임을 못하게 하려고) 부모가 컴퓨터를 치우면 화를 참지 못하고 주위 물건을 부수는 식이다.


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원장은 "아이가 어릴 때는 부모를 기쁘게 할 마음에 어려워도 참고 공부한다. 아이가 괜찮아 보여도 ^힘들지 않으냐^고 계속 묻고, 충분히 놀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게끔 학업량을 조절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사춘기 자녀가 말수가 줄고 부모와 대화를 꺼리며, 잠이 갑자기 줄거나 늘고, 식욕이 없어지는 등의 모습을 보이면, 우선 정신적 스트레스를 의심해 봐야 한다.

특히 소아·청소년기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모두 자라는 시기다. 성장기에 마음의 문제가 있다면 이를 고쳐줘야 아이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다. 이러한 마음의 문제는 사람의 인격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이가 이런 문제를 겪을 때는 그 마음을 이해하고 교감하는 태도를 보여야 한다. "너만 어려운 게 아니라 다 그렇다"거나 "이겨내라"는 식의 말은 도움이 안 된다. "1등이 아니어도, 명문대에 가지 못해도 괜찮다"는 식으로 아이를 위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손 원장은 "치료를 받아 아이가 좀 나아진다 싶으면 또다시 명문대 얘기를 꺼내는 부모도 적지 않다"며 "아이가 겪는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는 태도를 갖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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